요즘은 돌잔치도, 결혼식도 , 장례식도 대부분 식당이나 장례식장에서 해요. 그릇 걱정은커녕 설거지도 안 하죠.
그래서 사람들은 그릇을 서로 빌려 쓰는 문화를 자연스럽게 만들어갔습니다.
1. 이웃끼리 나누던 그릇 한벌
빌려 쓰던 그릇의 종류 중 가잘 흔한 건 나무그릇 (목기)였습니다. 가볍고 잘 깨지지 않아서 마을 잔치에 가장 실용적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체면이 필요한 자리라면 도자기 그릇이나 놋그릇(유기그릇)도 빌려 썼습니다. 백자접시. 다완. 술병은 제사상이나 혼례음식에 자주 쓰였고 놋그릇은 장터에서 대여하거나 친척집에서 빌려 왔습니다. 조선 후기에는 실제로 유기를 대여해 주는 상점도 있었답니다. 유기그릇은 고급 금속기라서 일반 서민이 여러 벌 갖추기는 힘들었지만 제사, 혼례, 회갑 등 의례에선 유기그릇을 쓰는 것이 체면치례였습니다. 그래서 필요할 때만 빌려 쓰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생겼습니다. 유기그릇은 유기점에서 대여를 했는데요 유기를 제작. 판매하는 장인이 여분의 그릇을 행사용으로 빌려주는 경우입니다. 오일장이나 시전에 서 빌려주는 상인이 있었습니다. 시전은 서울 중심의 전문 상점가입니다. 오늘날의 백화점이라고 하면 조금 비슷할까 싶은데요 한양중심부(종로)에 있었던 국가 공인 상점 거리입니다. 유기점, 도기점, 필방, 포목점, 제기점등 업종별로 구역이 나뉘었는데 왕실 관청에도 납품도 하고 서민에게도 판매하였는데 일부 상점에서는 제사용 그릇이나 상차림 대여도 했습니다. 조선시대에도 이렇게 렌털 시장이 있었습니다.
조선말에서 개화기의 기록들을 보면 종종 "제기꾸러미를 빌려왔다"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유기대여"광고가 심문에 실리기도 했습니다. 유기점에서 대여를 하거나 시장에서 대여를 하는 것 말고도 품앗이식으로 서로 돌려쓰기도 하고 마을 단위에서 제사나 잔치용 그릇을 돌려가며 쓰기도 했고 친척들이 그릇. 보자기. 상까지 들고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어떤 경우는 인심 좋은 부잣집이나 양반집에서 빌려 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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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주인 표시? 우리도 했습니다.
예전에 중국도자기를 감정할 때 완이나 반 뒤에 표시가 새겨져 있는 것 보고 신기해서 물어보니 그릇 주인의 표식을 해놓은 것이라고 해서 신기했습니다. 그릇들이 바뀌지 않게 표시해 놓은 것 보고 생활의 지혜구나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도 전통적으로 그릇에 표시를 해두는 방식이 있었어요.
- 놋그릇:바닥에 金家(김가), 洪氏.(홍 씨).丁丑年(정축년)처럼, 성씨, 가문, 제작연도등을 새기거나
- 찻잔/도자기:표시하기 어려우면 보자기에 싸서 이름표를 붙이거나, 그릇뚜껑에 메모를 남기는 방식도 있었습니다.
열하일기(연암 박지원)에도 북경에서 유기그릇을 대여, 판매하는 상점 풍경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즘엔 잔칫날이면 식당 예약이나 출장 뷔페가 많아졌고 집에서 직접 그릇을 수십 벌 꺼낼일은 거의 없죠 하지만 예전처럼 누군가를 위해 그릇을 꺼내놓고 빌려주고 정성껏 돌려주는 마음은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아름다운 문화로 남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